불평등에 대한 헤게모니

지난 2018년, 미국의 중앙은행이 밀레니얼 세대(1981~1997년생)가 앞선 세대보다 더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은행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정규직 남성의 소득은 X세대(1965~1980년생)가 현재 밀레니얼 세대의나이였을 때에 비해 18%,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에 비해선 27%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 세대의 여성역시 각각 12%와 24% 적었다. 반면 부채 규모는 비슷해서 상대적으로 더 큰 부채 부담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미국의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이들의 부모세대가 같은 나이일 때(1997년) 보였던 소비 패턴과 크게 다른 부분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일각에서 제기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이나 아보카도 샌드위치에 돈을 낭비해 집이나자동차를 마련하지 못한다’ 식의 인식을 일축했다. 보고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집과 자동차를 사지 못하는 것은 명품을 선호해서가아니라 이전 세대보다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16년 통계청의 '가계동향'을보면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31만6000원으로 1년 전 433만9600원보다2만3000원(0.6%) 줄었다. 20∼30대 가구의 소득이 감소한 것은 2003년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같은기간 청년층의 월평균 가계지출 역시 전년보다 0.9% 감소세를 보였다.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그들은 어째서 자신의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최초의 세대가 된 것일까. 다수의 기성세대와 주류언론은 보통 청년들에게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인 국가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그렇기에 성공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게으르고 나약하기' 때문이라 일축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단지 '게으르고 나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수명이 다하여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면 어떨까? 여기 다른 관점에서 그 원인을 바라보는 책이 있다. 호주의 라디오 진행자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헬렌 레이저의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이다.
저자는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밀레니얼 세대가 마주한 현실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이 부분에서 머릿속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음표가 만개할지 모르겠다. 보통 한국사람들에게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무언가 케케묵은것, 실패한 것, 독재, 빨갱이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냥 '사회주의'가 아니라'마르크스식 사회주의'라는 것을 강조한다.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한 설명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더불어 자본주의란 단지 경제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네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에따라 단지 경제적 부분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노동, 여성문제 등의 분야에서도 자본주의의 영향을 살핀다.

1장에서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분석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유물론자로써 물질이 이상에 선행한다고 보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어야 포용, 배려, 이해 등과같은 관념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소득이 줄어들어 생활이 어려워지던 사람들이 비록 문제가많은 언행을 쏟아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타계하겠다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것은 마르크스주의의관점에서는 당연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의 비난의 대상이었던 유색인종 유권자 중 소수가 트럼프에 투표한 것 역시 같은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명화
2장에서는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전적인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다. 마르크스주의의시각으로 바라보면 자본주의는 결국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를 포드와 도요타, 우버를 통해 설명한다. 폭발적으로시장을 확대해갔던 포드의 한계 이후 적재적소에 인력배치를 하는 것으로 생산성을 높인 도요타, AI 자율주행을 도입하는 우버는 모두이윤을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이들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점차 소득이 줄고 고용이 불안정해졌으며 결국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일자리를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각기의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동하였고 실제 큰 부를 벌었지만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질 뿐이다. 저자는 20년 후 과연 누가 우버를 이용할 것인지를 물으며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상황을 보여준다.
3장에서는 자본가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를 알아차리고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오늘날에는이데올로기라고 하면 개인의 신념 체계 정도로 이해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적인 신념체계, 특히 사회가 지금의 정치경제를 유지하리 위해 이용하는 신념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호주의 원주민 정책을 예시로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소외되어 있다
호주에서는 호주원주민들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을 강제로 빼앗아 '문명화'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수용소로 보내던 무시무시한 정책을 펼쳤다. 1960년대까지 대략 60년 넘게 시행된 제도였으며 80년대 이후로 진상규명 운동이 벌어졌다. 이후 2008년에 당시호주의 총리였던 케빈 러드 총리가 빼앗긴 세대에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는데 저자는 이를 백인들의 호주 원주민 지배에 대한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사과를 통해 호주 정부의 온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났지만 호주 정부는 이 피해에대한 어떠한 배상이나 책임에 대한 의무 등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것을 설명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에게 나보다 다른 노동자가 더 이윤이 된다면 내 자리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은 '죽이거나 죽거나'의 상황에 놓여 있다. 살아남으려면 최소를 가지고 최대한을 쥐어짜야 한다. 기업은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노동자를 쥐어 짤 수 밖에 없고 이는 노동자끼리 경쟁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의 본능이나 의도와 합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노동 환경에서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들을농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소외되어 있다.

5장에서는 페미니즘 주제를 다룬다. 마르크스주의가 만능도구는 아니기때문에 가부장, 성차별 등 페미니즘 주제에 대해 딱 들어맞는 답변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떤 성별이든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착취가 일어나며 이를 타계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러한 정체성의 구분을 지워 버리거나 성별(또는 기타 다른 정체성)에 기반한 공격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는 의미는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오로지 투쟁 기간에만 단결을 위해서 이러한 정체성의 구분을 지울 뿐'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옛날에 살았던 털복숭이 아저씨가 내놓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진 체계, '마르크스주의'를 쉽게 맛보게 해준다. 휘두른다면충분히 흉기로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그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시야 저편에 미뤄두었다면 가볍게 이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